게이트를 통과하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운임 징수

Gate

지하철의 개념은 탑승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하차하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일일히 운임을 지불하지 않아도 카드를 찍고 타고 찍고 내리는 것은 웬만한 수도권 통근망을 가진 나라의 공통적인 상식이 되어 가는 듯 합니다.

한국의 수도권 철도망 또한 노선이 매우 복잡해지고 있다지만, 도쿄의 노선망에 비할 정도는 아직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운임 지불 문제에선 환승게이트의 도입으로 난이도가 올라가긴 했지만, 이 또한 도쿄에 비하면 참 쉬운 시스템입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많은 상호 직통 시스템은 게이트를 통과하지 않았는데도 추가 운임을 징수하기 때문입니다. 승차 후 환승 게이트 없이 하차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선 계산이 되어, 타사 노선을 이용했으니 회사별 노선 구간의 기본료와 거리 요금을 각각 정산해서 한 번에 차감합니다.

찍어서 돈이 나간 건 맞는데, 내가 얼마를 내게 될지, 단순히 매표소 벽면의 도표만 봐서는 알 수가 없는 복잡한 시스템인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문제의 시작

정기권 구간을 활용하여 볼일을 보러 갔기에 왕편의 운임을 무료로 할 수 있었기에, 복편은 돌아오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일전에도 포스트를 올린 사기미철도 직결선으로 돌아와보기로 한 것입니다.

원래 금액이 흉악하기에 선뜻 고를 옵션은 아니지만, 이 또한 휴일이니까 가능한 기분의 변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조노구치역에서 JR 난부선을 타고 무사시코스기역으로 가서, 소테츠 직결선으로 갈아타면 니시야를 거쳐 집으로 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큐 전철이 아닌 JR 역으로 가서 교통카드를 찍고 탑승합니다. 낯선 방면으로 열차를 타는 것은 항상 여행 가는 신선한 느낌이죠.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 정거장의 여행 후, 승강장에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환승 동선 안내가 없습니다.

원래 노선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외부 환승이라 그럴까 하는 생각에 게이트에 찍고 하차했는데, 뒷쪽 안내판을 보고서야 제가 가야할 곳을 알 수 있었습니다.

Signs in Musashikosugi
무사시코스기역의 무심한 시각표 전광판

게이트 내부에서 다른 플랫폼을 향해서 환승 통로가 있었던 것입니다. 내부에서 그렇게 보이지 않게 안내판을 숨겨놨더니 기어이 일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 종이 하나면 해결이 될 거야

교통카드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티머니 교통카드는 잔액 정도만 조회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Suica나 Pasmo 같은 일본의 교통카드는 내부에 DB가 들어있기라도 한지, 승하차 이력이 시간별로 남아있고 잔액 추이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냥 역무원에게 따질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딜 가야 하는데 잘못해서 왜 이곳에 내렸는지 그런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다행히 어느 역에서든 역무원은 게이트 가까이에 있습니다. 한국과 다르게 게이트를 뚫고 가야 역무원을 만날 수 있는 불합리함 없이, 양쪽에서 모두 접근할 수 있는 비상 게이트 쪽에 이런 고충만 처리해주는 창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여성 역무원은 제 말을 듣고 하차역에서 제시할 종이 하나를 즉석에서 작성하여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통카드의 운임 차감을 취소하지 않고, (아마 취소가 안 되는 모양입니다) 대신 하차 상태를 탑승 상태로 변경해주었습니다.

suica/pasmo receipt
역무원이 적어준 종이

종이의 내용은 157엔을 이미 지불하였다는 내용 같습니다.

신기한 종이를 하나 받아들고 불안한 마음도 가진 채 다시 환승을 향한 여정을 떠났습니다.

신주쿠역 조차 헤매지 않았는데, 무사시코스기역에서 헤매다

무사시코스기역은 난부선과 멀리 떨어진 요코스카선을 억지로 이은 것처럼 환승역을 만들어 놨습니다. 제가 사전조사를 하고 가지 않아서 통로가 없는 줄 알았는데, 정상적으로 통로가 있었더군요. 애초에 떨어진 공간을 묶으려고 하니, 환승 통로가 너무 멉니다.

이 환승 통로의 시작점을 찾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특정 승강장에 열차가 정차하는 것처럼 써놨는데, 그 열차가 바로 문제의 환승 통로를 지나서 다른 승강장에 선다는 것을 알려주는 정보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승강장을 지나서 환승하면서, 이것이 출구인가 환승 통로인가 고민을 수없이 해야만 했지요.

경사로에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무빙워크가 있는 건 처음 봤습니다. 신기해 할 틈도 없이 촉박한 열차 탑승 시간에 초조해 하며 발길을 재촉 해야만 했습니다.

각역 정차지만 소테츠에선 가장 높은 등급

15량 열차가 오기도 하는 긴 승강장에 10량 짜리 짧은(?) 열차가 들어왔습니다. 휴일 저녁의 한산한 시간인지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데, 다음 정차역이 하자와요코하마코쿠다이, 아주 머나먼 역입니다.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아도 될 정도의 15분에 달하는 멈추지 않는 질주입니다.

그리고 하자와요코하마코쿠다이에 들어와서, 열차의 종별이 바뀌었습니다. 각정이 특급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사이쿄선과 게이힌도호쿠선 구간에서는 각정으로 신주쿠, 시부야 등 역을 다 섰지만, 소테츠에서는 본격적으로 역을 건너뛴다 이거지요.

그렇게 치면, 무사시코스기역 전후로 수많은 역을 건너뛴 것은, 종별이 아니라 노선이 다르니까 괜찮다 이걸까요.

아무튼 제가 사는 동네는 이런 열차 종별의 화려한 변신이 전혀 없는 곳이라 역시 익숙해질 수가 없네요.

니시야역에서 소테츠 열차와 환승 접속이 되면서, 건너편 승강장에서 뒤쳐져서 출발할 순서인 열차가 들어오고, 많은 승객들이 이 열차로 갈아탔습니다.

이 종이가 뭔데?

하차할 역에서 게이트로 가지 않고, 저는 소테츠 역무원에게 달려가서 종이를 보여주고 잘못 하차했다가 재승차 했으니 처리해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잘 이해를 못하더군요. 그래서 시간 순서대로 미조노구치에서 탔다. 무사시코스기역에서 내렸다. 잘못된 걸 알고 재승차하고 확인서를 받았다. 그렇게 여기 와서 이만큼 차감하고 정산해달라고 하면 된댔다고 했죠.

그러니까 운임표를 가져와서 고객님이 무사시코스기역에서 승차했다 이말이죠? 하면서 카드에서 그 금액을 차감했습니다.

으음… 하며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일단 나왔습니다만, 이건 뭔가 잘못된 게 맞습니다.

  • JR 3개역 이용 (기본료 + 거리)
  • 무사시코스기역에서 소테츠 본선의 야마토역까지 이용 (JR 기본료 + 거리 + 소테츠 기본료 + 거리)

이렇게 각각 더한 결과가 되니까요. 기본료를 더 뜯게 되다니, 참으로 무심한 처사입니다.

또 하나의 반전: 싸게 왔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알아본 결과, 저는 정상 운임보다 결과적으로 덜 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역무원이 “무사시코스기역에서 오셨다고요?” 하면서 운임표를 보고 계산했는데, 그것은 요코하마역 환승이었습니다.

그러면 거리가 29.2km에서 32.3km로 늘어나니 언뜻보면 손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숨겨진 사실이 있었는데…

JR의 이용 거리가 짧아지고 소테츠의 이용 거리가 늘었다

JR은 기본료가 싼 대신, 멀리 갈 수록 금액이 더 크게 오르는 것을 쉽게 체감할 수 있습니다. 도쿄 수도권에서 대형 사철을 선호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소테츠와 오다큐, 도큐 등의 노선은 멀리 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죠.

하자와요코하마코쿠다이역 전후의 신규 노선에 계산식을 피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일본은 건설비를 스스로 충당해야 하기에, 정부 인가만 잘 받아내면 특정 구간에 대한 가산 운임을 징수할 수 있습니다.

  • 니시야 – 하자와요코하마코쿠다이: 소테츠 30엔 추가 징수 (근거)
  • 하자와요코하마코쿠다이 – 무사시코스기: 츠루미역 경유, 정직한 영업거리 운임 징수 (총 거리는 줄지만 JR 이용 거리 증가)
환승 2회의 예전부터 다니던 요코하마역 경유 루트. 정상 이용시 총합 482엔.
real path
실제로 온 동선은 이와 같습니다. 내야할 금액은 569엔. 동선상 환승 게이트를 통과하지 않고 최종 내릴 때 돈을 많이 뜯깁니다.

그 결과 운임은 이 노선을 이용하지 않고 돌아갔을 때 482엔이 569엔이 됩니다. 차액은 87엔입니다.

Pasmo paid balance
실제 지불한 금액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제의 역무원은 트러블이 있었던 무사시코스기역이 아닌, 미조노구치에서 야마토까지의 운임을 요코하마 경유로 전체 징수했네요.

저 경로로 정직하게 왔으면 완전히 157엔 손해입니다.

하지만 직결선으로 왔으니 조금 더 비싼 루트를 온 것이라… 그보다 비싼 정상가 569엔보다 70엔을 손해보았습니다.

70엔이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닌데,  이걸 어쩌나 참 복잡한 심경입니다.

결론

  • 소테츠 – JR 연결선은 승객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습니다. 시간의 가치를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사람만 이용해야 하겠습니다.
  • 개찰구에 찍기 전에 다시 한 번 신중하게 생각합시다.